싯다르타 – 헤르만 헤세

갑자기 읽고 싶어져 읽은 책.

사월 초파일을 앞둬서였나

그런데 고타마 싯다르타 이야기가 아니었다 고타마 싯다르타는 다른 인물로 나온다.

내가 처음 본 책표지

게다가 구판은 제목이 석가모니라구…

읽다가 고타마 싯다르타가 부처로 따로 나와 당황했지만 책은 아주 잘 읽혔다 대문호인 이유가 있다 담담한 문체인데 문장 하나하나가 깊이 있고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 있었다.

문장도 아름답고 전체적인 면을 봐도 아름답다.

주인공 싯다르타가 수행자가 되어 떠돌다 갑자기 속세로 가 자신이 어리석다 여겼던 인물들을 이해하는 부분이 가장 좋았다.

작품이 너무 멋지고 전하는 바가 아름답다 굉장히 감탄하면서 보다가 19세기 서양인이 불교를 온전히 이해했는가? 의문이 생겼다 나는 헤르만 헤세에 대해 모른다 몇 작품을 읽었을 뿐. 그러나 주인공 싯다르타가 속세로 가 사람들을 이해하고 어리석음을 이해하고 그 속절 없음을 이해하고 사람들을 사랑하는 부분이 예수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.

그래서 주인공 싯다르타가 고타마 싯다르타가 아님에 무척 감탄했지만 지금은 온전히 감탄 할 수 없는 그런 기분..헤르만 헤세를 좀 더 읽어보고 트친님이 추천해준 두 도시 이야기(개신교의 대속적인 면이 잘 나와있다고 추천해주심)도 읽어보고 좀 더 생각해봐야겠다.

주인공 싯다르타는 결국 부처가 된다. 그런데 이걸 곱씹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예수님은 신전안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안에 있다는 말이 떠올라서 헤르만 헤세가 대문호인 것은 맞지만 불교 사상을 얼마나 대면할 수 있었나 의문과 의구심이 든다.

개신교인은 불교를 이해할 수 있는가?

기독교인은 불교를 이해할 수 있는가?

도교는 신선이 되고자하며 수행을 한다는 부분이 불교와 닮았지만 자신의 가피를 버린다는 부분이 조금 다르고..(현대 불교와는 닮았을지도 모른다)

불교는 보리심을 쌓아 부처가 되고자 함인가? 하긴 나도 불교에 대하여 잘 모른다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 말곤.

내가 아는 불교는 깨닫는 것. 깨달은 자가 곧 부처라는 것이다.

헤르만 헤세는 죄사함을 받기보다 예수가 되고 싶었던 걸까?

그렇다면 그도 그 나름의 부처이겠지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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